ING Ministry Growth in Christ

부활 신앙으로 새로워지십시오
정인수 담임 목사님

복음서에 보면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의 절망, 한숨, 두려움의 현장 한가운데에 찾아 오셨다. 홀연히 그들 한 가운데 주님이 서 계셨다. 그리고 그 절망의 문을 여는 새로운 부활의 열쇠를 주님께서 가져 오셨다,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Peace be with you).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Peace be with you).

폰라드라는 유명한 성서 학자는 부활의 주님이 던지신 이 메시지야 말로 성경을 통털어 나오는 성경의 어떠한 인사말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인사말이며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고 말한다. 인간의 죄로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간에 관계가 회복되었다 라는 인사말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 라는 인사이다. 그것은 “내가 죽음을 이기었노라, 내가 슬픔을 이기었노라, 내가 어둠을 이기었노라, 내가 절망을 이기었노라” 라는 엄청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부활의 메시지를 들은 제자들은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었다. 낙담에서 다시금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죽음을 이기었노라, 내가 슬픔을 이기었노라, 내가 어둠을 이기었노라, 내가 절망을 이기었노라” 라는 엄청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기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목적의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셨다. 그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부활의 주님은 이렇게 선포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라는 말씀은 사도됨을 의미이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 말이 품고 있는 메시지가 바로 전도이며 선교이며 교회이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의 주님께서 무력하고 방향성을 상실한 제자들을 향해 주시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받은 그들은 그 목표가 돌연 뚜렷해 졌다. 절망과 두려움에서 망각하고 있던 주님의 사명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던 그 고난의 예루살렘을 향해 다시 진군해 들어갔다.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고통의 도시로 다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과 함께 다 순교함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들로 그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였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이기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목적의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셨다.

교회도 때때로 비전을 상실한 제자들의 모습과 같이 무기력하고 패배감에서 하나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교회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도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신다. 부활의 주님이 임재하시고 부활의 주님이 부흥을 주실 때 그 공동체는 돌연 방향성을 잡아 간다. 새로운 사명, 새로운 미션, 새로운 비전이 형성된다. 교회가 다시금 일어나 합심하여 기도하기를 시작한다. 교인들이 뜨겁게 사랑을 회복한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구령의 열정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선교와 전도에 헌신자와 사명자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도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신다. 부활의 주님이 임재하시고 부활의 주님이 부흥을 주실 때 그 공동체는 돌연 방향성을 잡아 간다.

교회는 이러한 선교와 부흥의 사명을 받은 곳이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곳이다. 그 거룩한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 일을 수행하는 권세를 위임받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담대하게 선포하는 신적 기관이다.

교회는 이러한 선교와 부흥의 사명을 받은 곳이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곳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한다. 부활의 신앙은 교회의 마지막 진리의 보루이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이다. 교회가 이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할 때 평강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 선교와 전도의 공동체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흘러넘치는 권세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 기쁨, 그리고 평강이 온 교회마다 넘쳐 나기를 기도한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 기쁨, 그리고 평강이 온 교회마다 넘쳐 나기를 기도한다!
'당신의 기도의 삶에 불을 붙일 수 있는 5가지 방법'
당신의 기도생활에 불을 붙일 수 있는 5가지 방법... 기도생활, 이렇게 시작하라!

미국의 기도 운동가인 케빈 세너패티라튼(Kevin Senapatiratne)는 6일 '당신의 기도의 삶에 불을 붙일 수 있는 5가지 방법'이라는 글을 통해서 기도의 삶을 생활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주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청년들로 구성된 기도생활을 원하는 훈련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현재의 제로 베이스에서 갑자기 어떻게 기도생활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 여학생의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이 5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당신의 기도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 5가지 조언을 따라 기도해보라.

미국의 기도 운동가인 케빈 세너패티라튼(Kevin Senapatiratne)
1. 매일마다 하라.

기도생활을 위해 매일 짧은 시간 동안 기도하거나, 한 주에 한 번 긴 시간 동안 기도하는 방법이 있지만, 나의 경험을 비춰볼 때, 매일마다 하는 것이 기도를 생활화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5일 동안은 기도하고, 주말에는 쉬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도 있다. 존 맥스웰은 "당신의 성공의 비결은, 하루의 아젠다로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매일마다 하는 것이 기도를 생활화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2.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짧게 목표를 잡으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너무 높은 목표를 잡았다가 기도생활을 포기한다. 하루 10분부터 시작해, 점점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루 10분부터 시작해, 점점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3.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라.

기도만 하지 말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을 읽으라. 사복음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사복음서에서 읽은 예수님과 대화하라. (성경에서 읽은 내용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도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만 하지 말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을 읽으라.
4. 감사하라.

성경읽기와 함께 감사가 더해진다면, 당신의 기도생활이 생명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다. 기도에 감사함을 더하는 것은 삶에 대한 나의 시각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도움이 됐다. 나는 감사를 표하는 간단한 글을 써왔는데, 이것은 당신의 기도생활을 시작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은 기쁨에 대해, 받기만 하려는 기도가 아닌 주려고 하는 기도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며, 이것은 기도 외의 당신의 삶의 시간들을 지탱시켜줄 것이다.

성경읽기와 함께 감사가 더해진다면, 당신의 기도생활이 생명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다.
5. 기도생활을 원하는 기도팀을 만들어 서로 확인하는 등 책임감을 부여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혼자서 기도생활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 이를 나눌 수도 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 이를 나눌 수도 있다.

세너패티라튼은 "이 다섯 가지를 한 달 동안만 해보라"면서 "한 달 후에 잘 된 것과 잘 되지 않은 것을 점검하라"고 조언했다. 또 "잘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다음달에는 새로운 것을 해보라"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기도의 시간이 당신의 삶에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너패티라튼은 "이 다섯 가지를 한 달 동안만 해보라"면서 "한 달 후에 잘 된 것과 잘 되지 않은 것을 점검하라"고 조언했다. 또 "잘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다음달에는 새로운 것을 해보라"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기도의 시간이 당신의 삶에서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NG 새가족 소식]

양희창/김연경 성도 부부가 지난 20일 우리 교회 새가족으로 등록했습니다.

뉴저지에서 이주해왔으며, 자녀로는 2013년생 딸 양다인양이 있습니다. 동역은 빌레몬 1지역(지역장 윤모세 장로)의 예사랑 동역(동역장 김정원 집사)에 배정됐습니다. 따뜻하게 환영해주시고, 교회 생활과 애틀랜타 생활 잘 정착하도록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우석균/이지향 부부가 20일 우리교회 새가족으로 등록했습니다.

우 형제는 30대 초반으로 학업중이며, 이 자매는 20대 중반입니다. 동역은 빌레몬 2지역(지역장 곽용식 장로)의 반석 공동체(동역장 서성민 집사)입니다. 따뜻하게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매튜/김태연 부부가 20일 우리교회 새가족으로 등록했습니다.

김태연 자매는 청년 닷컴(김성찬 목사 시절) 출신이며, 남편 매튜 형제는 2세로 영어권입니다. 30대 초반으로 생수의 강을 참여하니 환영해주시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역은 빌레몬 1지역(지역장 윤모세 장로)의 하자 공동체(동역장 김우석 집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승환/지혜 가정

오승환/지혜 가정이 지난 14일 우리 교회 새가족으로 재등록했습니다. 자녀가 어리고 출산 등으로 인해 그간 비등록 교인으로 3부 예배만 참석한 뒤 교회를 나서기 바빴는데, 식탁 교제를 통해 이번에 등록하게 됐습니다. 부부가 모두 30대 초반으로 자녀는 아들 오해성(2012년생), 오지성(2013년생)과 딸 오승아(2015년생)양이 있습니다. 동역은 빌레몬 1지역(지역장 윤모세 장로)의 예사랑 공동체(동역장 김정원 집사)에 배정됐습니다. 3부 예배후 식사때 보시면 인사하시고 교제하시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040 ING 새가족 심방 소식]

김기현 & 승희 교우 가정(우정민 동역장) 새가족 등록 환영 심방이 24일 점심 자택에서 있었습니다.

정인수 담임목사, 조무제 목사, 이은조 전도사, 김정희 전도사가 참여했습니다. 심방을 원하는 분은 담당 심방 이은조 전도사(빌레몬)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ING 3040 목양레터 12호]

눈과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Open your eyes and heart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시편 81:10-12)

3040 세대를 위한 ING사역의 모토인 INSPIRE for Growth in Christ에서 INSPIRE에 따른 핵심가치 7개를 살펴본데 이어, 지난 2주전부터는 그 핵심가치의 구체적인 중심 실행 방향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성장’Growth in Christ에 대한 그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장Growth의 이니셜대로 먼저 G의 Gathering Together 소그룹 활동과 대그룹(전체 예배)으로의 모임을 강조했으며, 지난주에 두번째로 지난주 화해를 통한 관계 회복(Relational Recovery by Reconciliation)에 중점을 뒀습니다.

오늘은 Growth에서 세번째 이니셜로 연결되는 향후 사역 방향성에 대한 주제로 O는 Openness 개방성입니다. 눈과 폐부 깊숙한 심장과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Open your eyes and heart입니다. 이 개방성에는 온갖 세상의 조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중심은 하나님께 깊이 뿌리 박되, 서로 다른 것을 품고 포용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변화의 물결로 바꾸는 관용도 포함됩니다.

눈과 폐부 깊숙한 심장과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Open your eyes and heart입니다.

우리 3040세대가 살아가고 21세기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는 자녀 세대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미국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추월하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12살때 이미 전세계 바둑을 석권한 바둑 천재 이세돌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최근 바둑을 둬서 5판 가운데 4판을 지는 사실상 완패를 했습니다.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3040 세대와 자녀들이 살아갈 시대이기도 합니다. 기계문명과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만들어진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지니고 스스로 발달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3040세대가 살아가고 21세기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는 자녀 세대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미국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추월하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인간에게 타락한 죄성으로 인해 고유하게 박혀있는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이 기계문명의 발달로 탐욕이 연결되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 수 있는 위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 수도 있음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알파고’는 지금도 계속 기술적으로 더욱 높은 지능으로 진화중이지만, 인간처럼 죄인임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자신의 능력을 악한 충동에서 스스로 돌이켜 선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회개의 기능 장치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타락한 죄성으로 인해 고유하게 박혀있는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이 기계문명의 발달로 탐욕이 연결되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 수 있는 위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대는 더욱더 불확실성이 증가하며 변화가 초단위보다 더 미세한 단위로 발생하는 때입니다.이러한 때에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땅을 바라보고,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과 같은 문명만을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움과 인류로서 자부심을, 또 한편으로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미묘한 짜릿함과 공포가 혼재한 느낌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대는 더욱더 불확실성이 증가하며 변화가 초단위보다 더 미세한 단위로 발생하는 때입니다.

아마도 8천여년 전에 인류 고대사에서 인류 역사 최초로 역청으로 구워낸 벽돌이라는 기술혁신으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쌓아올리게 된 바벨탑 건축자들이 이런 짜릿한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벨탑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굉장히 조밀하고 체계적인 인적인 조직 구조도 갖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기술 문명이 발달할 수록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악함이 기승을 부렸음을 창세기는 바벨탑 사건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벨탑 문명의 몸통인 갈대아 땅의 악함을 떠나 하나님에게 집중한 사람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마도 8천여년 전에 인류 고대사에서 인류 역사 최초로 역청으로 구워낸 벽돌이라는 기술혁신으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쌓아올리게 된 바벨탑 건축자들이 이런 짜릿한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혼란과 내전에 종지부를 찍고 팍스 로마나로 서양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고 오늘날까지 삶의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로마제국 확립기 시대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때가 악’했습니다. 로마 제국 확립 시기인 AD 1세기에 사도 바울은 “때가 악하다”고 당시를 규정했습니다(에베소서 5장 16). 그리고 ‘세월을 아끼라’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요구했습니다.

혼란과 내전에 종지부를 찍고 팍스 로마나로 서양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고 오늘날까지 삶의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로마제국 확립기 시대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때가 악’했습니다.

사도 바울시대는 21세기인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슬로우’한 시대였지만 나름대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로마제국의 기술과 법체제로 세계 평화체제가 형성된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화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평화가 아닌, 인간의 죄된 본성과 야망에 따른 폭력과 강제에 의한 질서였기 때문에 ‘때가 악하다’고 바울은 시대를 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화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평화가 아닌, 인간의 죄된 본성과 야망에 따른 폭력과 강제에 의한 질서였기 때문에 ‘때가 악하다’고 바울은 시대를 진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때가 악하다는 선포에 이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에베소서 5장 17절)고 주문합니다. 세상의 기술혁신과 첨단 논리가 인간에게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술혁명이 진정한 평화와 유토피아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 미혹에 함몰되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고, 주님의 뜻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도록 눈과 마음을 활짝 주님께 열어 제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때가 악하다는 선포에 이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에베소서 5장 17절)고 주문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 통찰과 요구 사항이 2천년 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알파고를 선두로 해서 인공지능 등 놀라운 기술혁신의 혁명적인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21세기에 우리 3040세대가 온맘과 영혼에 새겨야 할 말씀인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통찰과 요구 사항이 2천년 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알파고를 선두로 해서 인공지능 등 놀라운 기술혁신의 혁명적인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21세기에 우리 3040세대가 온맘과 영혼에 새겨야 할 말씀인 줄 믿습니다.

세상의 문명이 더욱 발전할 수록 하나님의 자녀는 창세기 바벨탑 시대나, 2천년전 로마제국 시대나, 100년전 1차대전, 70년전 600백만 유대인 대학살과 수천만명의 인명살상을 불러왔던 2차대전 시대나, 어느 시대에 처하든 상관없이, 기술혁신의 열매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눈과 마음을 고정하여 기도하며, 말씀으로 스스로와 가정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해왔습니다. 그리고 더 큰 파괴적 도구를 지닌 인간세계가 충돌하고 폭발하고, 신음하며 허물어질 때, 하나님의 뜻을 품은 작은 씨앗들이 되어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피워내고 새로운 대안의 하나님 공동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기술혁신의 열매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눈과 마음을 고정하여 기도하며, 말씀으로 스스로와 가정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해왔습니다.

우리 애틀랜타의 한인 3040 세대 여러분들께서 인류사에서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시점에서, 이 놀라운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도, 변치 않는 주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눈과 가슴을 활짝 열어제끼고, 더욱 간절히 적극적으로 말씀과 주님을 사모하며 찾는 새로운 희망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조무제 목사 드림.

변치 않는 주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눈과 가슴을 활짝 열어제끼고, 더욱 간절히 적극적으로 말씀과 주님을 사모하며 찾는 새로운 희망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True Love

[True Love-Parenting in the Christ]

[자녀 양육&부모역할] 사랑해서결혼했는데, 어느듯 부모가되다보니, 이전에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광야를 걷는듯한 자녀양육과 부모역할. 시행착오의연속이죠? Parenting을 통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치유와 기쁨을 함께 찾아가시고 싶으시면 아래클릭!]

[부부친밀묵상]

유병훈 전도사와 같이 고민하고 묵상하는 성서적 부부관계

유병훈 전도사가 목이 안좋은 관계로 오늘은 녹음대신 글로 보내 드립니다.

오늘의 말씀은 계시록 3:20절 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의 본문을 통해 두 번에 걸쳐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고,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어떤일이 일어나는가? 일어나야 하는가? 입니다.

먼저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주님은 밖에 서 계시고 나는 안에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나와 관계가 아예 없는 타인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굳게 닫혀 있는 나의 문을 두드리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를 부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고 주의를 끄신후에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모습을 이 구절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구절은 생생하게 표현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음성이라는 말, 우리 주님의 음성! 사실 우리도 정말 듣고 싶은것이 우리 주님의 음성이 아니신지요? 이 말을 원어에서는 φωνῆς - 포네이스라고 합니다. 여기서 영어의 Phono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역시 소리에 관한 말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것은 이 φωνῆς-포네이스라는 말의 근원은 φημί-페이미라는 말에서 왔는데 이말은 φάω -파오라는 말 즉 빛을 비추다, 조명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음성이라는 말의 시초가 빛을 비추다, 반짝거리다라는 시각적인 것이라는 것은 참 흥미로운 연결이 아닐 수 없지 않습니까? 이것들을 미루어 보면 결국 음성이란것은 내 마음속에 빛이 비춰지게 하는 것이고 마음속에 깨달음이 있게하는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누군가의 음성을 들었을때, 말씀을 읽을 때 내 마음속에 반짝하는 깨달음이 있었던 기억이 다들 있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반짝하는 순간의 깨달음을 붙잡아 계속 생각을 하면 그것이 묵상이 되고 결국에는 깊은 성찰이 되는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것은 그렇게 잔잔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내 귀에 대고 소리치시는 그런 강력하고 특별한 부르심만이 하나님의 음성일것이라고 생각을 하곤 하는데 오늘의 본문은 그것과는 다르게 우리의 심중에 반짝거리는 깨달음을 주시는것, 말씀을 읽는중에, 친구와의 교제중에, 혹의 삶의 현장에서, 그때 그때 들려주시는 반짝거리는 깨달음을 주시는 것들을 주님의 음성이라고 하는것을 알수있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고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반짝반짝하는 봄 햇살의 물결 같이 잔잔할 수 있지만 그 말씀 이전에 우리의 인생을 두드리셔서 우리가 말씀에 집중하게 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두드리는 것은 나의 인생의 어떤 사건이 될 수도 있고, 환경의 변화도 될 수 가 있고, 또 누군가를 만나는 만남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이를 통해 우리들의 인생을 두드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에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문을 두드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설혹 그 음성이 잔잔한 아침 햋살같은 음성이라도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신 그 반짝거리는 잔잔한 음성을 우리가 붙잡느냐 붙잡지 못하느냐 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님의 깨달음의 반짝임을 끝까지 붙잡지 못하고 세상의 염려와 근심 그리고 삶의 분주함같은 어두운것들에 휩싸여 놓쳐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한테 말씀 하시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인생을 두드리셨고 그리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그러므로 나의 인생을 어떤식으로 주님이 두드리시는지에 민감하셔야 하고 그러고나서 그를 통해 나에게 혹시 작은것 같을지라도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특별히 주시는 말씀가운데 어떤 반짝이는 인사이트가 있는것들이 있었는지, 깨달음이 있었는지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러신다면 하나님께서 아직도 우리에게 분명한 음성으로 말씀하고 계심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 하시는지 조금이라도 알고난후에 이것이 우리의 부부사이에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요?

두가지를 저는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먼저 두드렸으면 말을 해야 한다는 것과 또 반짝거리는 말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입니다.

부부사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늘 똑같은 것 같지만 그안에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의 사회적 책임이 바뀌면서, 경제적 위상의 변화에 따라 ,그 안의 관계의 다이나믹이 늘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한몸이라고는 해도 그 안에 언제나 서로에 대한 요구와 바람의 부딪힘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많은 경우 이 부딪침에서 대화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자가 들어주지 않아서 불만이 생긴것에서,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지 않고 요구만 하는 배우자에게 노여워 진데서, 혹은 나에게 상의도 않고 큰일을 벌여버린 배우자에게 노여움이 생긴데서, 대화를 시작하기보다는 갈등이 생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이유들로 티격태격하다가 큰 싸움이 되는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배우자를 두드리고 말을 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불만을 이야기하고 음성을 높였어도 내가 나의 배우자의 심중에 반짝거리는 의미있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화를 내거나 토라지기 보다는 내일이 결혼 기념일이라는것, 언제가 발렌타이데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고, 선물은 이런걸 원한다고 말씀해 주시는것이 훨씬 남편을 편하게 해주는 일인것처럼 또 남편이 아내분에게 아버지 어머니 생신 때 몇 주쯤 초대하고 싶다고, 나중에 부모님 티켓 끊고나신 후에 아내에게 통보하는것 보다는 미리 말씀 하시고 아내의 이해를 구하는게 훨씬 현명한 일인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배워야 할것은 반짝거리는 음성으로 말 할 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설은 천마디를 늘어놔도 말이 아니고 불평과 불만 그리고 비난의 말은 듣는 사람에게 배우자인 나를 존중하게 하거나 사랑하게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주는, 반짝거리는 햇살같은 음성이 되지 못합니다.

분명한것은 만약에 우리가 우리 주님의 음성처럼 반짝이는 말을 하는 법을 배운다면 나의 배우자가 나를 사랑하는것은 물론 나를 통해 인생이 바뀌고 더 나아가 세상까지도 바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서환 KTF 부사장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인해 반대가 심하던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장교로 군 복무중이던 이 분이 그만 수류탄 폭발사고로 자신의 팔을 잃어 버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신을 잃었던 그가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그 옆에 자신의 애인인 아가씨가 있었답니다. 그 때 계속 자신의 병간호를 오는 애인에게 조서환씨가 용기를 내서 물어봅니다 아직도 자길 사랑하냐고 그 때 그렇다고 대답하는 애인의 모습에 너무나 기뻤던 조서환씨였지만 곧 불구가 된 자기를 위해 이 착한 아가씨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자기를 떠나는게 좋겠다는 말을 눈물을 참으며 합니다.

그 때 그 아가씨의 야무진 대답이 이랬습니다. '지금까지는 당신은 나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당신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지 않느냐고, 나는 기쁘게 당신을 도우면서 일생을 살고 싶다고…'

조세환씨는 그 후 어마어마한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 아가씨와 결혼한것은 물론 자신의 부인의 은혜를 늘 생각하며 인생을 개발해서 장애우임에도 KTF의 부사장이 되는 입지전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 분이 애경유지의 입사 면접에서 자신의 장애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면접관들에게 외친 “일은 내 머리가 합니다 내 손이 아니라!” 는 말은 아직도 전설처럼 내려옵니다.

어떻습니까? 이 부부야말로 반짝이는 말들로 서로의 인생을 살리고 심지어는 기업도 사회도 부인못할 큰 변화와 업적을 만든 케이스가 아니겠습니까?

배우자를 두드리셨습니까? 말을 하십시오 그것도 반짝이는 영감있는 말을 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배우자가 살고 또 내 인생이 살고 내 가족이 살것입니다. 인생은 짧지 않습니다. 아직 이런 말을 하는 법을 배울 시간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받는 모든 연합의 성도 분들께서 반짝이는 언어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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